부여 장하리 독립유공자 추모탑은 2015년 장하리 출신 애국지사 16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후세에 전하고자 건립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은 장정마을(장하1리) 출신 강석기, 강철구 부자, 이들은 진주 강씨이며 대종교인, 강석기(1862~1931)는 대종교에서는 강우(姜虞)로 불리며. 1900년 경흥감리서 주사로 관직에 나갔으나 을사늑약 후 낙항하여 장정마을에 천영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노동야학 활동을 전개했다.
강석기는 1909년 대종교에 입교해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9년 4월 만주 3·1 운동에 연루되어 피체 후 강제 국내 송환되어 회령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2년 대종교 대표로서 사회단체 대표들과 연명으로 태평양회의에 우리 대표단 위원의 출석을 용인하여 주기를 청원하는「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를 제출하기도 하였다. 1931년 뇌졸중을 앓다 별세하였다.
그의 아들 강철구(1894∼1943)는 1920년 1월 대한군정서 총재 서일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4월 국내에 파견되어 고향인 부여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2년 6월 또다시 국내로 파견되어 서울과 부여에서 자금 모집과 동지 규합 활동을 진행하던 중 체포되어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 포교에 진력하는 한편, 1942년에 만주 동경성에 대종교 천전(天殿) 설립을 준비하던 중 같은 해 11월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1943년 10월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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