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옛 가네보방적 전남공장

전남ㆍ일신방직의 전신인 가네보방적(鐘淵紡績)은 미쓰이 계열사로, 1929년 광주시 북구 학동에 제사공장을 설립 운영하다 1935년에 임동으로 옮겨 방적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은 방적기 3만5000추, 직기 1440대, 종업원 3000명의 국내 최대 규모였다. 가네보방적은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수용품 생산 공장으로 전환, 조선인 소녀들을 강제 동원했는데, 이 공장에서 10대의 조선인 소녀 약 2500명이 열악한 환경에서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의 노동착취에 시달렸다. 정부가 확인한 피해자는 34명으로 당시 여공들의 평균 나이는 12.8살, 이들 대부분은 강제 동원 이후 7년 동안 공장 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되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가네보방적 전남공장은 1951년 미군정 통역관이었던 김형남과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용주가 가네보방적을 불하받아 각각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으로 분리 운영했다. 김용주(1905~1985)는 경상북도의회 의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및 경상북도지부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비행기 헌납, 징병제 독려, 황국신민화 정책을 선전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인물. 2021년 광주시는 김용주 동상 옆에 친일반민족행위 내용이 새겨진 일제 잔재 단죄문을 설치하였다.

2017년 전방 임동 공장이 가동 중단되었고, 2020년에는 일신방직 임동 공장도 가동 중단되었다. 현재 공장 터는 초고층 아파트와 복합 쇼핑몰이 들어서는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