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김경천 집터

김경천(1888~1942)은 국권피탈 전인 1909년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일본군에서 장교로 복무하다가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을 양성했고, 1920년대 연해주에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끌었다. 일본군, 러시아 백군, 중국인 마적들을 상대로 혁혁한 전과를 올리면서, 연해주 일대와 중국은 물론 국내에도 ‘백마 탄 김 장군’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1935년 무렵부터 연해주 지역 한인 지도자들에 대한 스탈린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어 김경천도 이듬해 반혁명 혐의로 체포되어 3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고, 1939년 다시 간첩 혐의로 8년 형을 받고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복역하다 1942년 사망했다. 1956년 재심에서 3년 형 선고를 받은 1936년의 재판이 잘못 되었다며 무죄를 선고받았고, 8년 형을 받은 1939년의 사건도 1959년 2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가족과 출세를 뒤로하고 독립투쟁의 험난한 길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언제나 고민하였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무장투쟁의 방법으로 이를 실천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