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1904년 2월 6일 경의선을 일본의 군용철도로서 부설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임시군용철도감부를 편성하고 일본군이 경의선을 직접 부설하도록 명령했다. 일본군의 공병대대와 철도대대는 1904년 3월부터 직접 경의선 부설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군대만으로 철도를 부설하는 것이 무리한 일이라고 판단, 일본의 토목건축회사에 각 공구의 공사를 청부하였다. 경의철도 부설 공사는 전구간에 걸쳐 급속도로 진행되게 되었다. 경의철도 공사는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의 토건업계가 회생할 수 있는 절호의 황금시장이 되었다.
일제는 경의철도를 부설하면서 무려 1천5백만 평에 달하는 토지를 빼앗고, 수천 채의 가옥과 수천 기의 분묘를 파괴하였다. 일본의 이와 같은 토지약탈은 한국의 연선주민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경의철도를 부설하면서 연인원 수천만 명의 한국인 노동자·농민을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중노동을 강요하였다. 그리하여 철도연선에서는 분쟁과 항쟁이 끊이지 않았다.
1904년 8월 27일 김성삼, 이춘근, 안순서는 당시 용산과 마포 사이에 가설된 일제의 군용철도에 폭약을 매설, 군용열차를 폭파한 후 체포되어 도로변 철도 건널목 부근(지금의 마포구 도화동)에서 강제 동원된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당했다. 그런데 일제는 총살형 장면을 은폐하거나 비공개로 처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인 사진사들을 동원하여 그 광경을 찍게 하고 그것을 판매용으로 제작하여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일본의 군사시설을 해코지 하거나 자신들의 위력에 감히 맞선다면 누구라도 이러한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노골적인 무력 과시의 의도가 깔려 있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