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신규식 생가 터

신규식(申圭植, 1879 ~ 1922) 선생은 1879년 1월 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채호, 신백우와 함께 ‘산동삼재(山東三才)’라고 불렸다.

17세 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 관립 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武德)을 쌓게 되었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자 음독 자결을 기도하여 오른쪽 눈의 신경이 마비되어 흘겨보는 상이 되므로 스스로를 예관(睨觀)이라고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이듬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신정(申檉)으로 개명하고 쑨원[孫文]이 이끄는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에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가맹한 뒤 10월의 무창의거(武昌義擧)에 참가하여 신해혁명에 공헌하였다. 1912년에는 상하이에 교민이 늘어남에 따라 독립운동을 위한 교민단체로서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이사장이 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상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 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 정부수립을 추진했다.(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 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정부수립 후 고질적 파벌 의식과 지방색·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 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에 신규식은 1921년 5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를 맡았고, 26일에는 외무총장도 겸하였다. 신규식은 임시정부를 대표하고 외교 활동 일선에도 앞장서서 임시정부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하지만 통합은 어려웠고 신규식은 이후 심장병과 신경 쇠약으로 병석에 누웠다. 신규식은 독립운동 앞에서 한국인들이 분열하는 것을 통탄하였다. 신규식은 25일 동안 먹지 않고, 말하지 않고, 약도 거부하다가 1922년 9월 25일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 신규식 생가 터

신규식, 신건식 독립운동가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우리 독립운동사에 의미 있는 공간. 하지만 현재 상태는 제대로 된 안내판 조차 없이 방치되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곳이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