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안개 Nuit Et Brouillard, Night And Fog, 1955

개요 다큐멘터리 | 32분

제작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

출연 미셀 부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0여년이 지나 버려진 수용소의 현재 모습은 흑백의 기록화면으로 이어진다. 12년 전 빈 들판엔 수용소 건설이 진행되었고 ‘밤과 안개’ 작전으로 유대인들이 수감되기 시작했다.

영화는 흑백의 과거를 현재의 컬러 화면과 병치시키며 기억의 문제를 끄집어내 인간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보여주려 하였다. 내레이션은 전쟁과 살육의 공포가 기억 속에서 무디어지기는 했지만, 공포를 조성했던 인간들의 잔혹성은 끝나지 않았으며 어디선가 다른 폭력들이 이어지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세계영화작품사전 - 밤과 안개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며 수용소 건설에서부터 최종적인 대량학살까지를 보여주는 알랭 레네의 초기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폐허가 된 현재의 수용소 모습, 과거의 뉴스릴 화면과 스틸사진 등을 교차시키면서 기억과 망각의 문제를 주제화하였다. 실제 수용소 경험이 있던 장 카이롤이 직접 내레이션 시나리오를 써서 체험의 진정성을 전달한다.

1. 작품의 배경
알랭 레네의 초기영화 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다큐멘터리인 〈밤과 안개〉일 것이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이 작품을 일컬어 그 당시까지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시적으로 들리는 작품 제목은 실제 1941년 11월 나치 독일에서 히틀러가 시행했던 ‘밤과 안개’(Nacht und Nebel)라는 작전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나치 정권에 저항하는 자들은 누구나 밤과 안개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명칭이었다.
14살에 영화에 입문한 알랭 레네는 영화 외에도 만화, 회화, 문학 등 다양한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초창기에는 꾸준히 예술가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를 만들었다. 〈반 고흐〉(1947), 〈폴 고갱〉(1950)을 거쳐 6명의 감독이 카르파치오, 로트렉 등 화가 6명의 작품세계를 다룬 〈픽투라〉(1951, 레네는 여기서 고야 부분을 맡았다)까지가 그러하다. 피카소의 동명 그림을 소재로 한 〈게르니카〉(1950)에서는 한 사회가 다른 사회에 가한 폭력의 공포를 이야기하였다. 이러한 단편 다큐멘터리들은 알랭 레네의 영화세계에서 ‘형성기’에 해당된다.
〈밤과 안개〉는 1955년 프랑스의 제2차 세계대전 역사위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영화는 유대인 수용소와 희생자를 담은 문서보관소의 흑백필름과 10년 뒤 그 건물과 장소를 촬영한 컬러 필름을 조합하여 만들어졌다. 알랭 레네는 제작 당시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에서 가져온 필름만 사용하고 독일에서 온 필름은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전전 독일에 대한 강한 불신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와 나치의 수용소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는 제작 당시에 프랑스 당국과 마찰을 빚었다. 본래 영화에는 프랑스 군모를 쓴 간수가 잠시 등장했는데 검열 당국에서 보기에 명백히 프랑스 비시 정부가 홀로코스트에 관여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두달의 협상 끝에 영화 제작자들은 프랑스 헌병의 제복을 덮어서 역사상의 증거를 묻어버리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협상에도 불구하고 〈밤과 안개〉는 1956년 칸영화제에서 결국 배제되었다. 다른 참가국의 국가적 감정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이었다.
크리스 마르케와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조각상 또한 죽는다〉(1953)를 통해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의 문화에 가한 폭력을 보여줘 프랑스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알랭 레네가 또다시 구설에 오르게 된 것이다. 〈조각상 또한 죽는다〉는 단 한번의 공식 상영 뒤에 정부로부터 상영금지 조치를 당한 바 있다.

2. 주제 : 기억의 재현
이 작품은 프랑스 당국과의 갈등 외에 개봉 뒤 다른 측면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영화를 본 관객은 이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로서의 홀로코스트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가공할 규모의 유대인 절멸 작전이 수행되었던 강제수용소의 모습을 카메라는 길고 차분한 트래킹 촬영을 통해 보여주었다. 무심하게 연출된 수용소의 평범한 모습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서 기대했던 충격이나 경악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후 알랭 레네는 이 영화의 정치적 의도를 묻는 질문에 “요점은 알제리였다”라고 대답하였다. 표면상으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과거를 불러내며 이를 망각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이면에서는 프랑스가 식민지 알제리에 가한 폭력을 망각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도 전달하고 있던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알랭 레네는 ‘유대인’이라는 표현보다 ‘강제추방자’(déporté)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다. 홀로코스트와 식민지에서의 폭력 등 더 큰 맥락에서 대량학살에 대한 반대의 의사를 포괄하기 위해서였다.
〈밤과 안개〉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이미 사멸된 기억으로서의 학살을 직접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적 증거로서의 과거이다. 알랭 레네는 구체적 인물, 집단, 국가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집단적인 책임을 묻는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과거에 대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망각에 저항하는 것이 궁극적인 실천이 된다.
한편 알랭 레네는 일관되게 기억의 재현 문제를 다루었는데 초기 다큐멘터리인 〈밤과 안개〉에서부터 극영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1961), 〈전쟁은 끝났다〉(1966) 그리고 이후 〈멜로〉(1986)에 이르기까지 그는 현재의 모든 순간에 깃든 과거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고 주장해왔다. 특히 〈히로시마 내 사랑〉(1959)과 〈뮤리엘〉(1963)에서는 전쟁이라는 역사의 상처를 배경으로 해 일치하지 않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3. 영화적 기법 : 교차편집과 트래킹숏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이 작품은 흑백과 컬러 영상을 조합하여 강제수용소의 풍경과 황폐화된 현재의 모습을 초연하게 제시한다. 수용소의 과거는 1942~45년에 촬영된 흑백의 역사적 기록 화면으로 되어 있고, 현재는 컬러 영상으로 촬영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진행하는 교차편집과 현재 수용소의 폐허를 훑는 트래킹숏은 〈밤과 안개〉 그리고 알랭 레네의 초기 영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폐허처럼 펼쳐진 수용소를 촬영한 컬러 화면이 흑백 화면으로 컷되는 과정에서 형태적 유사성을 활용하였다.
가령 철조망 쳐진 수용소 울타리의 말뚝들의 트래킹숏은 행군 중인 나치군대의 다리를 촬영한 앙각 화면으로 조형적으로 일치된다. 단지 규칙적인 구멍들만 뚫렸을 뿐 칸막이도 가림막도 없는 참담한 화장실의 모습을 훑던 현재의 화면은 ‘청결은 건강이다’라는 수용소의 흑백 표어로 이어진다. 교차편집과 트래킹숏은 적절한 조형적 마찰을 활용해서 일종의 충격효과를 양산한다.
한편 알랭 레네는 〈밤과 안개〉와 이어진 극영화인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각각 나치 수용소와 원자폭탄에 대한 선정적이지 않은 기록 영상을 활용하였다. 특히 이 두 영화에서는 트래킹 촬영이 돋보였는데, 〈히로시마 내 사랑〉의 대담한 미학적 시도에 충격을 받은 고다르는 “트래킹은 모럴의 문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4. 문학과 영화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아방가르드 문학가인 장 카이롤은 〈밤과 안개〉의 내레이션 각본 작업을 담당했다. 그의 내레이션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폭력을 망각하거나 폭력에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충격적 항의문과도 같았다.
알랭 레네는 복합적 예술 장르인 영화와 문학을 미학적이고도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결합시켜온 대표적 작가 중 하나이다. 어려서부터 모험과 낯선 것에 관심을 보여왔던 그는, 앙드레 브르통, 쥘 베른, 줄리앙 크라크,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
자신이 존경하던 로베르 브레송이 〈죄악의 천사들〉(1943)에서 극작가 장 지로두와 함께 작업한 것에 고무되어 그 자신의 작업에도 작가들을 끌어들였다. 〈게르니카〉에서는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와, 〈밤과 안개〉에서는 소설가 장 카이롤과, 〈스티렌의 노래〉(1959)에서는 레이몽 크노와 작업했다. 이후 누보로망 소설가였으며 이후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던 마르그리트 뒤라스나 알랭 로브그리예와 함께 기존의 문학적 관습에서 벗어난 시나리오를 통해 낯선 영화 문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편 〈밤과 안개〉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장 카이롤은 이후 알랭 레네의 〈뮤리엘〉시나리오를 담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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