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군 장성의병 창의지

기우만(1846~1916)은 1895년 명성황후시해사건과 단발령이 있자 겨울부터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상소가 받아들여 지지 않자 이듬해 1월에는 복수토적과 단발령 철폐, 옛 제도의 복구, 국왕의 환궁을 내세우며 근왕의병으로서 봉기하자고 전라도 각지에 통문을 발송하였다. 그는 장성향교를 근거지 삼아 장성과 그 밖의 지역에 격문을 발송하며 호응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적극 호응한 지역이 바로 나주였으며, 장성에서는 1896년 음력 2월 7일 기우만의 주도로 장성향교를 도회소(都會所), 양사재(養士齋)를 향회소(鄕會所)로 삼아 의병을 일으켰다. 장성의병이 일어나자 창평 유생 고광순도 적극 호응하여 가담하였다. 그는 고광순, 기삼연, 김익중, 황석 등 200여 명의 지사들과 함께 나주로 가서 나주의병과 연합 서울로 진격하기로 하고 광주로 진출하였다.

그러나 2월 27일 선유사 신기선 등이 내려와 의병의 해산을 명령하는 왕명을 전하자, 통곡하며 의병을 해산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 202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