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몽규는 1917년 9월 28일 간도성 연길현 용정신촌 명동(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교사 집안의 가정에서 태어나 현지의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를 다녔다. 그 과정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1935년에 남경(南京)의 김구(金九) 산하에서 군사 훈련을 받고, 제남(濟南) 소재의 이웅 산하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한다. 하지만 1936년 4월경에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본적지인 웅기경찰서에 구류되어 취조를 받은 후 같은 해 8월에 석방된다.
송몽규는 그후 대성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1938년에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윤동주와 함께 입학한다, 송몽규도 윤동주처럼 문학에 상당한 관심을 두었고 또한 조예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면서 교내의 문학동인 잡지인 문우(文友)를 편집하기도 했다.
송몽규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1942년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제국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유학 중 송몽규는 윤동주, 고희구 등과 함께 민족의식 앙양 및 구체적 운동 방침 등에 관한 협의를 거듭하였다. 이들은 조선 민족을 문화적으로 계몽ㆍ계발하여 민족의식을 자각하게 하고, 독립 달성을 위해 민족문화를 수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같은 활동을 하던 중 ‘재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의 주도자로 1943년 7월에 윤동주와 함께 체포되었다.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은 송몽규와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어 매일 밤 이름 모를 주사를 맞다가 1945년 2월 16일에 윤동주가 옥사를 하게 되고, 같은 해 3월 7일에 만 27세로 송몽규도 생을 마치게 된다. 아직도 그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서 관계자들은 입을 닫고 있으나 당시 큐슈제국대 의대에서 생체 실험이 행해지고 있었으므로 그것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송몽규가 거주했던 곳은 기록에는 동평정 5번지로 되어 있으나, 현지 주민들과의 인터뷰 결과 현재의 동평정 5~8번지 일대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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