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
1913년 5월 13일 도산 안창호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 민족부흥을 위한 민족의 힘을 기르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8도 대표를 창립위원으로 하여 조직되었으며, 미국유학 중인 청년학생이 중심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흥사단원들은 안악사건, 105인사건, 3·1운동, 동우회 사건 등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등 독립운동에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였으며, 1926년에는 월간지 《동광(東光)》을 창간하여 1933년까지 40호를 속간하기도 하였다. 1912년 창간의 《신한민보》도 흥사단의 경영으로 국민교육과 계몽에서 일익을 담당하였다. 1949년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고 미국본부를 미주위원회로 개칭, 1961년 5·16군사정변 때까지 ‘금요강좌’와 《새벽》지를 통한 사회교육에 진력하였다.
안창호(1878-1938)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상가
독립협회, 신민회, 흥사단 등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활동을 하였다. 신민회를 조직, 대한매일신보를 기관지로 하여 중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청년학우회를 조직하여 민족계몽운동 및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였다. 이후 미국으로 망명,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를 조직하고 신한민보를 창간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 청년학우회가 해체되자 1913년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임시정부 조직에 참가, 내무총장·국무총리대리·노동총장 등을 역임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는 등 중국과 미국을 오가며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다. 1932년 윤봉길의 폭탄 의거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1938년 병으로 보석, 휴양 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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