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화성행궁 기생만세운동현장(봉수당)
1919년 3월1일 발발한 수원지역의 31운동은 3월 한 달 내내 수원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이어졌으며 이 가운데 3월 29일 일어난 만세운동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기생 30명의 주도로 일어났다. 15~23세인 이들은 수원기생조합 기생들로 이들의 만세운동은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일제의 ‘기생단속령’으로 과거 예술인으로 인정받던 이들이 관기로 내몰리면서 내재된 반발심을 사전 계획 하에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원기생조합 기생들은 자혜의원으로 검진을 받으러가던 중 일제의 보건 정책에 항거하여 수원경찰서 앞에서 김향화(金香花)를 선두로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자혜의원 앞으로 이동하여 다시 한 번 독립만세를 불렀다. 자혜의원에서 이들에 대한 검진을 거부하자 기생들은 의원을 나와 다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김향화는 곧 체포되어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였다. 한편, 자혜의원은 현재의 도립의료원과 비슷한 성격으로 1909년에 시행된 칙령에 의해 전국에 설립되었다. 칙령 발표 후 청주·전주·함흥에 의원이 설치되었으며, 수원 자혜의원은 공주·춘천·광주·대구·진주 등과 함께 1910년에 세워졌다. 자혜의원은 초기에 봉수당 건물을 이용하여 진료를 하였으며, 1923년 봉수당을 허물고 신축 벽돌 건물을 세웠다. 1990년대까지 수원의료원이 이 자리에 있었다가 화성복원 사업과 함께 해체 전 봉수당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