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순 증손자 고영준
고광순 (1848.2.7 ~ 1907.10.16) : 독립장
고광순은 임진왜란 때 금산(錦山) 7백 의사(義士)의 지도자로 알려진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둘째 아들인 학봉(鶴峰) 의열공(毅烈公) 고인후(高因厚)의 사손(祀孫)으로 생부(生父)는 고정상(高鼎相)이나 고경주(高慶柱)에게 계후되었다. 그의 집안 중에 함께 의거를 일으킨 사람은 인봉(麟峰) 고제량(高濟亮)과 고광훈(光薰) 고광수(光秀) 고광채(光彩)가 있다. 이처럼 그의 집안은 대대로 항일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위엄이 있어 남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성품을 지녀 지도자적 자질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학문은 생가 외조부 황주(黃洲) 김공에게 익히고, 장성하자 상월정(上月亭)에 올라가 10년 동안 문을 닫고 심력을 다하여 육경(六經)을 전공하였으며 제가(諸家)의 소작은 읽지 않았다.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4월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순창(淳昌)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족조(族祖)인 인봉 고제량(麟峰 高濟亮)과 함께 면암을 찾아갔으나 이미 면암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후였다. 다시 인봉과 함께 기우만과 백낙구(白樂九)를 찾아가 거사할 것을 모의하고 의병을 모아 오고자 떠난 사이에 일이 발설되어 기우만과 백낙구가 체포되었다. 고광순은 좌절되지 않고 동지 규합에 힘썼다. 화개동 연곡사(燕谷寺)에서 전사 순국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2016년 5월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