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황운정 아들 황운제너비치

황운정은 1920년 3월부터 동년 7월까지는 왕청현과 동녕현에서 조선독립군 부대에 참여하여 일본 정규군과 맞서 싸웠으며, 1920년 7월부터 1922년 10월까지 러시아 연해주 추풍 솔밭관에서 러시아 백파 및 일본군과 전투를 전개했다. 1937년 강제이주를 당한 뒤 카자흐스탄 가라칸다에 수용되었다. 1938년 12월 복권된 그는 1960년 2월까지 카자흐공화국 알마타의 경제 부문에서 일하다가 1989년 12월 31일 서거했다. 



<녹취록>

00:31 Q. 3.1운동때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3.1운동때어머니의 집에서일을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집은 부유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15-16살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했습니다. 그때는 결혼을 일찍 했었죠. 그러고 나서 독립운동이 시작했을 때늦은 저녁에 그녀의 집에서 모두 다 모였습니다.
양초를 들고.. 그때 당시에 램프가 없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일본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아마도 그때 따발총이 있었으면 모두 다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따발총이 아닌 총이라 재장전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살아갈 수 있었죠. 저희 아버지께서는 연해주에서 총을 들고 직접 싸우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시간이 지나서 대한민국이 완전하게 독립하게 될 때 까지도 직접 일본군에 대항하셨습니다.
  
02:26 Q.  아들로서 황운정 지사에 대한 생각은?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한국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우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올림픽 대회가 열렸을 때도 모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죠. 아버지의 삶은 독립운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통해 아버지의 삶을 대한민국에 바치셨습니다. 2~3개월 동안 아버지께서는 전단지를 들고 서울까지 다녀오신 적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항상 한국은 제 모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을 엄청 그리워하셨죠. 저희 아버지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됐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알고 계시는 분들은 드디어 모국에 가서 자신의 꿈을 이루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아프리카에서 살든 프랑스에서 살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다 같은 한인입니다. 저는 북한과 한국에서 온 학자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왔고 저한테 한인들은 다 같은 한 민족입니다. 아버지의 몸은 이제 한국에 있지만 제 마음에 항상 같이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여기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합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 (2021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