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김영관
김영관(96세) 생존광복군
1944년 9월 일제에 강제 징용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 제 1지대 2구대 소속으로 활동. 화랑무공훈장, 독립유공 대통령 표창, 건국훈장 애족장 등을 수여 받았다.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일제 강제 징용 이후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내용들과 우리 역사에서 광복군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 한 내용입니다.
<녹취록>
00:56
일본군복을 입고 있었어요. 전부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까. 중국사람들이 일본군복을 입으면 위험하다. 저격 당할지도 모르니까. 자기네 중국 (군복)옷도 빌려주고 그랬었는데, 거기에 있다가 환복해서 입대했어요. 일본군복을 벗으니까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더라고요. 복장은 중국부대 복장입니다. 그래서 최전선이기 때문에 정류장에서 실무를 고사하고, 돈도 구하기 힘들고, 통신도 어렵고, 중국군 제3전군이다. @@ 제 3전군에서 결론적으로 중국에 있고, 식사도 장교클라스에 대우를 해준거에요. 그 사람들이. 식사도 그렇고 무기도 장교클라스로,, 식사도 금품짜리 쌀주고, 그리고 반찬은 중국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좋아해서, 돼지 비계로 기름을 내서 그걸로 볶아먹었습니다. 야채를 사서 돼지기름과 볶아먹는 수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죠. 집은 민가를 빌려서 안채에는 대장과 대장 부인이 있는데. 대장 부인이 중국사람이에요. 중국에는 침대가 없어 대나무를 깔고 이부자리 해서 그러고 잤습니다. 내가 3전군에서 3km 떨어진 하부지@라고 있었는데, 조그마한 양자부 지류에요. 한 2`-300호 되는데, 밤에 나가면 키큰 사람들 종진@이라고 불러오고, 중국사람들은 키가 작았다고, 그만큼 우리가 체격이 좋았고, 그만큼 중국사람들이 우리를 존경했어요. 이 사람들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니까 중국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존경까지는 아니지만, 우러러 봤다고, 그게 사실 국위를 선양시켰다고 하면 됩니다. 중국이 한국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산속에 있는 사람들도 알고...
04:26
힘들었다고 생각하는게 없었어요. 단계별로 일본군대 생활, 탈출과정, 광복군 생활, 그리고 해방 후에 사회에 나와서 생활 이렇게 구분한다면 광복군 생활은 그렇게 힘들었다고 기억하지는 않고, 행복하고, 기뻤다. 의무적으로 끌려오거나 의무적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스스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리고 동지들이 계급이 1등병, 2등병 나눠져있는게 아니라, 최전선에서는 다 같이 동지라고 했으니까 같이 해서 아픔을 같이 내주고, 친가족 이상. 제일 서러운 건 나라가 없다는 것인데 긴 이야기라 할 수 없지만, 뼈저리게 느끼지만,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그런데 광복군에 가니까 우리 동지들은 서로 뭉칠거 아니야. 동지들 서로 형제같고, 그래서 즐겁게 일하고 훈련하는게 힘들더라도 힘든 줄 모르고, 지휘하는 것도 돌아가면서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행복했다. 고통스러운 건 단지 탈출해서 가는 과정, 그리고 해방 후에 근거지에서 사회를 나갈 동안에 중동군이랑 @@이랑 섞였어요. 그래서 생사가 위험할 적도 있었지만, 특별하게 광복군 생활은 과장이 아니라 재밌고, 즐거웠어요.
06:47
질: 광복군 규모와 사용했던 무기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1945년 전쟁 당시에는, 광복군이 600여명 밖에 안됐거든? 그니까 지금 군대처럼 사단이나 이렇게 단위별로 움직이지 않았고, 여기 소총, 권총 ... 만약 광복군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초라했겠느냐는,.. 임시정부는 있었지만, 부대가 없었다는 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까? 세계 역사상 전통 부대가 없었던 곳은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광복군 역할은 상당히 중요하다.
07:54
질: 처음 보았던 태극기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나요?
광복군 한 7-8명이 오더라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장이 왔더라고. 그 때 처음 봤지. 나로서는 벅찬 감정이더라고. 왜냐면 저 태극기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구나. 내가 저 태극기를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겠다. 지금도 나는 어려움을 느끼거나 하면 그 어려움 속에서 태극기를 보고 처음 느낀 초심을 지금도 잊지 않아요. 국가를 대표하는 기다. 국기는 나라다. 하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09:22
질:광복군의 탄생배경과 광복군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1907년 8월 1일 해산되니까 우리 군대는 @@ 로 갔어. 그런데 일본군대가 우리나라를 침공하니까 의병이 만주로 가면서 1920년 독립군을 봉오동 전투 등 큰 전투들도 했어. 처음에 광복군 창설할 때는 중국 군사에 소속되어있었어. 그래서 1944년 8월에 통솔권을 받아왔어요. 그래서 광복군은 중국군의 지휘를 받은게 아니라, 임시정부의 지휘를 받았다는 거 아니야. 그리고 광복군과 임시정부가 이런 일을 했다는 걸 국민 사람들은 모르는 거 아닙니까? 다양한 방법으로 국내로 전파시켰지. 그래서 국민들이 이 소식들을 들으면, 아 우리 나라가 일본에게서 언젠간 독립하겠다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어.
13:03
역사를 잊지 말아라 역사에서 교훈을 주자면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말씀드리면, 먼저 첫 번째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주변에 있는 작은 거 하나하나 실현시켜나가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해주고 싶은 것은 남을 탓하지 말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제공: 항일영상역사재단(2018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