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서상교

서상교 (1923년생, 대구 출신, 학생운동, 건국훈장 독립장)

대구상업학교 재학중 동교생들과 항일학생결사 태극단(太極團)을 조직하였다. 일본군 입대 반대 등 일제식민통치에 대항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한편 조직확대를 위해 동지포섭 활동에 주력하였고, 단원들은 비밀장소를 이용하여 학술연구토론회·각종 체육회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군사학 연구에도 정진하여 군사관계서적의 번역, 글라이더 및 폭발물 제조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였다.

▶공훈록: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3581&ipp=10000



<녹취록>

00 : 00
질: ‘태극단’은 어떻게 조직하게 되셨나요?
답: 태극기, 우리나라 국기 태극기를 상징해서 우리 이름을 태극단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몇몇 동기들하고 의논해서 만든 단체야. 1942년부터 항일독립을 위해 비밀결사 조직을 하기 위해서 군사소집을 하고, 훈련도 하고 또 화약, 무기 등을 만들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가서 원조를 얻으려고 했고. 동기는… 일본 학생과 우리나라 학생 사이의 차별대우가 심했거든? 일본 국기는 막 다는데, 우리나라는 아무도 안 달고... 그런 거 때문에, 우리나라 태극기를 상징해서 당 이름을 태극단이라고 몇몇 동기들하고 같이 의논해 가지고 소집을 해서 활동을 했어. 일제의 치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독립 쟁취를 위해서... 우리가 어린나이였지만 모여 가지고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비밀 결사를 조직했는데, 그것도 이제 보통 조직이 아니고, 점선 조직이라고 중간 중간 하나가 붙들려 잡혀 들어가도 그다음이 문제가 안 되는, 점선 조직을 그렇게 조직했지.
 
02 : 07
질: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답: 명목상에는 체력단련이다, 체력단련을 위해서 우리가 야외로 간다, 이런 일이 있으면 야외로 가서 모이자, 이런다고 해 가지고 모여서 거기서 또 의논도 하고 그랬는데, 실제론 그게 독립운동을 위해서 서로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가자 하는 걸 의논하고 또 앞으로 문제가 있으면 어떤 게 문제다 이런 것(파악)도 하고, 또 국내 상황 정보 이런 것도 서로 의견교환 하고... 그렇게 지냈지. (PD: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비밀교사를 해 가지고 군사훈련 같은 거... 혹은 그... 과학 면에서는 글라이더를 만드는 방법이라든지, 또 군사훈련에 관한 책을 많이 보고, 이래서 앞으로 일본에게 대항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 준비를 해 왔지. 그래 가지고 이제 국내에서 안 되면 중국에 가서 임정[임시정부]의 요청을 얻어 가지고 그렇게 (활동을) 하자고 그렇게 서로 의논했지.
 
03 : 39
질: 어떤 분들이 함께 활동하셨나요?
답: 같은 학교의 동기들. 동기들하고 다른 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들도 좀 있었고. 전부 스물네 사람인데, 그중에 이제 형무소에 가기는 열 사람이 갔고, 나머지는 형을 집행유예한다고 해서 내보내 줬고, 열 사람이 옥고를 치룬 셈이야.
 
04 : 18
질: 검거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요?
답: 학교에서, 수업 중에... 수업 중에 형사들이 와서 일망타진을 해 간 거지. (PD: 학교 수업 중일 때?) 수업 중에 자기네들이 경찰서가서 그렇게 정보를 얻고, 학교에 와서 잡아 간 거지. 일망타진을, 일망타진을 해 간 셈이지. (PD: 열 분이 잡히시고 열네 분이 훈방으로 나오셨다고 했잖아요, 그 열네 분 중에 한 분이셨던 거네요?) 그렇지.
(PD: 수업 중에 잡히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그건 뭐 말할 수 있나. 그냥 붙잡혀 가는 거지, 기분이고 뭐고. ‘아 이제 문제가 생겼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만 잡혀 가는 거지. 고등계 형사가 방망이 가지고 때리고 거꾸로 매달고 물을 먹인다든지 온갖 짓을 다하는 거지. 또 펜치로 손가락을 눌러서 손톱을 뽑는다든지 그런 것도 있고. 경찰서에서는 조사한다고 고문을 많이 하거든? 몸을 비튼다든지 방망이를 가지고 때린다든지 물을 먹인다든지 뭐 온갖 고문을 하는데, 열네 사람은 이제 경찰서에서 훈계를 해서 내보내 주고 열 사람만 형무소에 가도록 했지. 갔는데 그중에 또 세 사람은 순국해 버렸고... 해방 전에 죽은 사람도 있고 해방 후에 죽은 사람도 있고, 순국했어. 세 사람이.
 
06 : 39
질: 형무소 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답: 검사가 5년 이상 실형이라고 했거든? 뭐 4년 이상 실형인가... 그런데 판사가 1년을 더 올려서 5년 이상 실형을 갔지. 어른으로 말하면 무기징역이다. 그렇게 받아서 나이가 조금 많은 사람은 김천형무소로 가고, 나이 좀 적은 사람은 인천형무소로 가고. 갈려서 갔지.
 
07 : 17 해방 후에 촬영한 사진 설명
(PD: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게 뭐예요?)
해방 후에. 집에 나와서 얼마 있다가 찍은 사진이야.
질: 출옥하셨을 때 어머니는 뭐라고 하셨어요?
답: 반가워하시지, 뭐. 눈물 흘리시고 반가워하시지. 자식이 형무소에서 나왔으니까. 반갑고 눈물도 나고 그러셨지. 죽어 나온 사람도 많고. 그때 형무소에서 나올 때는 몸이 좀 부어 가지고... (PD: 왜 그렇게 되신 거예요?) 그 안에서 뭐... 심장, 폐결핵... 형무소 안에서 심장병, 폐결핵, 중이염.. 온갖 병에 걸려 나와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도저히 못한다고 했다, 내가 또 매일 시내에서 조금 야외로 나가면 언덕이 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 돋을 때, 언덕 있는 데 거기 누워서 있다가 집에 오고. 그렇게 몇 년 하고 병원에 가니까 의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라고, 이 사람이 진작 죽어야 될 사람인데 살아왔다고. ‘어떻게 무슨 약을 먹었냐’고 물어봐서 이러이러 했다고 하니까, ‘아, 그것 참 신기하다’고 이야기를 했지.
 
09 : 39
질: 독립운동가로서 후손,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답: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있던 ‘충효사상‘.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게 충성하는 것, 이것을 잃지 말고 또한 조국의 통일을 위해서 마음을 쓰고. 평화통일을 위해서 다같이 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