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승병일

 승병일 (1926년생, 평북 정주 출신, 1940년대 학생운동, 대통령표창)

1943년 오산학교에 재학하던 중 비밀결사 혈맹단(血盟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행동강령을 설정하여 뜻있는 청년, 학생들의 광복군 참여를 독려함은 물론 심훈의 『상록수』 등을 윤독하며 항일민족의식을 함양시키는 데에 기여하였다.

▶공훈록: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3920



<녹취록>

00 : 12
질 : ‘혈맹단’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는지?
답 : 그때만 해도 이게 왜정 말기가 되어서 학교 공부도 하지만 밤낮 근로 동원, 근로 동원을 만날 했어요. 막 공장으로도 가고 광산에도 보내고 말이야. 또 농사짓는 데 (가서) 모 심고, 또 벼 메고 말이야. 공부도 잘 안 시키고 밤낮 근로 동원 가고. 모여 앉아서 이놈의 새끼들 공부는 안 시키고 밤낮 일만 시킨다고 말이야. ‘이제 머지않아서 일본이 망한다.’ 사회 여론이 그렇게 돌아가고, 그리고 우리도 이제 젊은이들이 모여서 마음으로 ‘아 이거 망하긴 망한다는데. 망하긴 망한다는데, 언제 망하느냐.’ 그런 심경을 가지고 있을 때라고. 그래서 우리가 비밀결사를 만들었다고.
우리가 이제 그때는 어렸지만, 초등학교 다닐 때부턴 그런 것에 대해서 가정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그래서 그 영향을 받아서 중학교에 가자마자 친구들을 만나니까 또 그런 친구를 만나서 거기에 대해서 깊이 서로 의견 교환도 하다 보니 가까워지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데 대해서 자연히 (관심을 갖게 된 거지.) 어린 마음이지만 말이야. ‘아 이거 우리 할아버지도 독립운동 하다가 돌아가셨다, 자기 아버지도 독립운동 하다가 감옥 생활을 많이 했다, 우리 백부님도 감옥 생활을 많이 했다.’ 이러다 보니까 어린 마음이지만 거기에 대해서 이제 호기심을 가지고 처음에는 그저 서로 친구들을 사귀고 대화를 했던 거야. 했던 건데, 사회 바깥 여론들이 자꾸 ‘일본이 망한다, 망할 때가 다 됐다, 망할 때가 온다’ 자꾸 그러니까 더구나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단체를 만들자 해서 비밀결사 혁명단을 만든 거야. 어렸었지만. 그렇게 해서 이제 만든 게 아마 1942년, 1943년 그때 조직을 했다고. 그럼. 그때 우리 나이가 열일곱 정도 됐겠지?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열아홉.

02 : 50
질 : ‘혈맹단’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됐는가?
답 : 혈맹단이라는 게 아주 옛날 우리 역사서를 읽어 보면 있었어. 항일단체가 옛날에도 있었어. 그런 게 나오더라고. 그런 우리가 얼핏 단체 이름을 생각해 보는데 안 돼(적당한 게 나오질 않아). 그러다가 혈맹단, 우리가 이거에 대해서 본 게 있고 들은 거, 읽은 게 있거든? 그래서 혈맹단이 어떠냐고 해서 아 그거 좋다고. 그래서 혈맹단이 된 거라고. 그래서 이름과 같이 우리가 칼끝으로 여길(손가락을) 째 가지고 서로 피를 발라 교감했다고. 피로써 맹세한다. 우리는 같이 죽고 같이 산다 말이야. 맹세한다. 그래서 혈맹단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근데 혈맹단이라는 게 문자가(이름이) 그 당시에는 참 굉장히... 시대에 맞는 말이었어.  

04 : 12
질 : 단원 조직은 어떤 방법으로 했는가?
답 : 혈맹단 우리가 조직을 하는데 초등학교 친한 친구들, 서로 통할만한 애들만 골라 가지고서 서울에 있는 사람부터 중국에 있는 사람까지 말이지. 그 초등학교 같이 졸업하고 또 멀리 간 사람도 있잖아? 그런 사람도 해서, 그렇게 해서 조직을 했어. 오산학교 자체에서 한 열한 명이 됐고, 단원 한 사람이 몇 사람씩 단원을 또 모집을 하게 돼 있었다고. 비밀로, 그건. 내가 친한 단원을 하나 모집하면 내 옆에 있는 선우진이 모집을 한 단원은 내가 몰라. 이렇게 비밀결사를 해서 한 게 나중에는 한 열댓 명 됐어.  

05 : 11
질 : 혈맹단은 어떤 일을 했나요?
답 : 혈맹단이 처음에는 학생들이 모여서 우리가 이제 일본이 망하면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대일로 일본 놈을 하나씩은 죽이고 살아나야 될 거 아니냐 이런 생각도 하고. 그래서 단도 가지고 수류탄 던지는 연습도 저녁에 모이면 하고 말이야. 싸워야 되니까. 싸워서 이기고, 죽이고 우리가 살아야 되니까. 그런 일도 하고... 우리가 일찍 모여서, 아침 일찍 제석산에 올라가서 운동도 하고 말이야. 신체를 단련해야 우리가 싸울 거니까. 우리가 이제 그렇게 학생으로서... 근로 동원하는 거 반대하고, 근로 동원을 잘 안 나갔다고. 그저 일본 놈이 망하는 날에는 그놈들이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단 말이야. 거기에서 대비해야 한다고 이러한 일들을 했지. 그때라고 직접 항일, 일본 놈을 때리거나 뭐하거나 그런 운동은 못하고. 그런 거 할 분위기가 아니지만.  

06 : 57
질 : 혈맹단 내에서 역할?
답 : 단장이 선우전이라는 그 사람이 단장이고 나는 부단장이고 그랬어. 거기 뭐 재무부장, 훈련부장 다 있었지, 거기. 다 있었는데, 난 부단장으로 있었어. 부단장이면 단장 대신으로 한다는 얘긴데, 다 뭐 관계하지. 조직, 훈련... 재정도 있긴 있었지, 재정도 있긴 있었어. 가장 아마 실무를 많이 봤겠지, 내가. 실질적인. 아마 선우전하고 나하고는 제일 서로 믿을 수 있는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친구다 그렇게 돼 있었다고. 그래서 물론 각 부장도 다 그런 사람이지만, 그 우리 둘이 중심이 돼서 했어.  

07 : 51
질 : ‘혈맹단’ 일본군에 발각된 이유는?
답 : 사건 발단이 어떻게 된 거냐면... 우리 비밀결사가 있었는데 어떻게 돼서 왜경이 그걸 발견을 했느냐. 발단이... 우리가 그때 졸업하고 상급학교 갈래도, 나는 더구나 내가 교련 성적이 나쁘면 그때 상급학교 진학을 못 했어요. 배석 장교가 좋다고 (승인을) 해 줘야 진학을 한다고. 나는 교련 시간에 자주 빠져서 교련 성적이 나빠. 그래서 대학 진학을 못하고. 또 내 주변 사람들도 다 그랬고. 그래서 우리는 학교 진학하는 걸 그만 두고 신의주에 교원양성소라는 게 있었어. 우리 학교 졸업하기 전에 조금 전에 말이야. 학교 다니면서, 신의주 교원양성소에 가서... 교원양성 강습소지, 그러니까? 그 학원을 다녔어. 2개월인가 다녔는데, 2개월 다니게 되면 2종 훈도 면허를 줬다고. 2종 훈도. 소학교 선생. 그래서 은동호라는 사람하고 나하고 다른 사람들 다 같이 학교 가는 거 그만 두고 소학교 선생이나 하자. 그래서 소학교 선생으로 우리가 가서 난 고안국민학교라고, 그땐 국민학교라고 그랬어, 국민학교의 선생이 되고. 은동호라는 사람은 제주 영한포에서, 거기서 온 사람이거든? 영한포가 집이거든? 그 영한포에서 소학교 선생을 했다고. 소학교 선생을 하는데 그땐 교장이 일본 사람들이었어. 그러다 학교 직원회에 무슨 일이 있어서 저녁에 끝나고 술을 먹잖아? 술을 먹고... 그 일본인 교장하고 학교 문제로 언쟁이 붙어서, 오산학교 운동을 하는 사람이 교장을 때렸어. 그러니 선생이 교장을 때리니, 그때만 해도 지금하고 또 달라. 지금은 또 뭐... 조선 사람이 일본 놈 교장을 때렸으니 이게 보통 일이야? 그러니까 경찰이 와서 심문했을 거 아니야. 우리가 오산학교 출신이거든? 그땐 오산학교 출신이라고 하게 되면 이 사회에서 경찰에서 이색적으로 볼 때야. 오산학교 졸업생이라 하게 되면 좀 다르게 보곤 했다고. 항상 사회가.
(10 : 53 / 왜요?) 오산학교 졸업한 사람이 독립운동을 많이 하니까. 오산학교라 하게 되면 그 사상이 다르다. 이렇게 돼서 오산학교 졸업한 놈이 선생 하다가 일본 교장을 때렸으니 말이야, 경찰이 형사가 이 놈 좀 수상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조사를 하고 말이야. 그런데 수첩에서 우리 암호가 되는 파랑새라는 글말이 나왔단 말이야. 이게 도대체 뭐냐 말이야. 그 술 먹고 그런 사람을 일본 놈이 형사가 때리면서 (취조를) 하다 보니까 취중에 뭐 우리 단체 암호다 이런 식으로 얘기가 된 모양이야. 그래서 취조를 받기 시작해서 혈맹단인 게 탄로가 됐다고. 그렇게 해서 탄로가 됐어.
그래서 영한포 경찰서가 지금으로 말하면 우리 수사본부가 됐어. 오산학교 혈맹단 사건 수사의 수사본부라는 게 있잖아? 그래서 우리가 전국에서 다 잡혀서 서울에서 한 사람, 중국에서 한 사람 다 잡혀서 영한포로 갔다고. 영한포로 처음 갔을 땐 한 열댓 명 됐었어. 열댓 명 돼서 취조를 받고 나가고 우리 일곱 명만 남았어. 일곱 명만 남아서 거기서 신의주 형무소로 넘어갔다고.
다 나가고 나중에 일곱 명이 남았는데, 한 사람 빼 놓곤 장질부사가 걸렸어. 그 감옥, 감방에서 말이야. 그러니까 장질부사 걸리고 그때만 해도 3월, 4월이니까 추워. 감옥에 들어갔는데, 감옥에서 그 병이 돌면 다 돌게 돼 있어. 그걸 걸렸어, 우리가. 걸렸는데 일곱 명 중에 딱 한 사람 안 걸렸어. 선우전이란 사람은 안 걸리고, 다른 사람 6명. 그거 걸리게 되면 열이 나고 설사하고 토하고 열이 나고 고열이 나고 또 머리가 다 빠져요. 딱 한 사람은 안 걸리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기를 하나님이 병간호하려면 한 사람은 살아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그래서 살린 거다, 그렇게 우리가 얘기를 했어.  

13 : 21
질 : 이후에는 어떤 일이?
답 : 이북에서 출옥했잖아? 출옥해서 있는데, 하루는 말이야. 내가 약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항일투쟁 한 사람은 혁명가라서 혁명가이신 승병일 씨께서 나와서 군민의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래. 나보고 말이야.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라고 그래서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뭐 이런 게 왔다고 그러니까 ‘야, 아직 잘 몰라. 지금 뭐 이 난장판에 말이야. 섣불리 나서서 왔다갔다하면 안 돼. 나가지 말아.’ 그래서 안 나갔어. 안 나가고 있다가 그 다음에 조선민주당이 창당이 됐어. 조선민주당이 창당이 되어서 이제... 그 조만식 선생이랑 창당이 돼서 우리 평안북도 사회민주당 당수가 주기영 선생이라고 오산학교 교장 하던 사람이 평안북도 당수였거든. 그땐 당수라 그랬어, 당수. 당수가 되고. 그렇게 이제 조선민주당이 창당이 되면서 내가 거길 같이 들어갔어. 같이 들어가서 활동하다가 마지막엔 뭐 그 적이 되고 해서 날 잡으라고 해서 말이야. 어? 승병일이고 선우전이고 거기 다 들어갔다고. 우리 부장들 다 들어가고. 잡으라고 해서. 야간 도망해서 넘어 왔다고.
조선민주당이라는 건 이북의 유일한 우익이야. 우익단체 정당이야. 처음으로 조만식 선생을 당수로 해서 생겼다고? 생기고 각 도에 지부가 생겼다고. 각 도에 지부가 아니라 민주당 평안북도 도당부 뭐 이렇게 해서 각 함경도 평안남도 황해도 다 생겼지, 이제. 평안북도에 평안북도 민주당 도당부라고 해서 거기 우리 주기영 선생, 우리 내가 나온 오산학교 출신, 오산학교 선우기성 씨 이런 사람들이 주동이 돼서 민주당을 창당해 가지고서 하다가 적이 돼 갖고 말이야. 민주당에 무기가 있다느니 해서 승병일이랑 잡으라고 해서 말이야. 잡히면 어떻고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될 수도 있거든. 그래서 야간 도망해서 넘어 왔어.인민위원회하고 충돌을 되고 하다 보니까 기세가 저거해서(별로여서) 우리 아버지가... [옆에서: 인민위원회가 더 셌나 봐?] 처음부터 셌지. 인민위원회 아래 적위대라는 게 있어 가지고 총 가지고 전부 군대 조직도 하고 있었어. 민주당은 그게 없었어.  

16 : 21
질 :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답 : 나라의 독립. 나라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거. 그 인식이 바로 되어야 하는 거 같아, 젊은이들은. 과거의 쓰라린 역사를 많이 통달을 하고, 나라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거. 독립, 독립한 나라가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절실히 알고서... 독립국가의 일원으로서의 책임이라고 할까, 사명이라고 할까. 그걸 위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체력 단련도 열심히 하고 이 세계를 살피란 말이지, 그러한 식견도 좀 넓히고 말이야. 그러면 좋겠단 말이야.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