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당 간사장이 미국에 ‘정로환’을 선물한 까닭

작성일
2019.08.05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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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il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33화 - 전쟁 속 ‘약’의 비밀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쟁과 질병, 그리고 의학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으로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전염병이 창궐했지만, 인류는 이를 퇴치하는 의학 기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전쟁은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올해로 69주년을 맞은 한국전쟁도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한편으론 마취 방법이 정립되고 부상자를 헬기로 실어 나른 최초의 전쟁이었다. 거기에다 참전국들의 선진 의료 기술이 국내에 들어와 우리 의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뜻밖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8선 부근에서 서구 의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원인 모를 ‘괴질’이 돌기 시작했다. 3000여 명의 유엔군 병사들이 고열과 복통을 동반한 출혈로 쓰러져 갔다. 이 병은 훗날 쥐가 옮기는 전염병인 유행성출혈열로 알려졌는데, 그 정체를 밝혀낸 것이 바로 우리 의료진이었다. 1976년 이호왕 박사가 세계 최초로 ‘한탄 바이러스’란 원인균을 발견하고 이어 예방 백신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이 지금 인간을 살리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리밥 남작’부터 ‘밤 독수리’까지···20세기 전쟁의 참화 속 요지경 ‘약’ 이야기

메이지 유신 이후 끊임없이 침략 전쟁에 나선 일본은 1904년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러시아와 일전을 벌였다. 그런데 당시 일본 육군에서 무려 2만7000여 명이 각기병으로 사망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군인을 죽인 건 러시아군이 아니라 각기병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팔·다리가 부어올라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이 병은 비타민B 부족으로 걸리는 것인데, 당시에는 전염병으로 알려졌다. 한데 희한하게도 육군과 달리 해군 병사들은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기록에 의하면 1883년만 해도 장거리 항해에 나선 370여 명의 수병 중 45%가 각기병에 걸린 적도 있다. 이 사건 후 해군 의무국장 다카키 가네히로는 병사들의 식사를 쌀밥에서 보리밥으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각기병이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보리에 비타민B가 함유된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군은 “목숨을 맡긴 병사들에게 냄새나는 밥을 먹일 순 없다”면서 흰쌀밥만을 고집했다. 뒤늦게 육군도 보리밥 식단을 도입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이라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 되고 말았다. 이 공로로 작위를 받은 다카키에게는 ‘보리밥 남작’이란 별명이 따라다녔다고 전해진다.

전쟁터에서는 으레 상한 음식을 먹거나 오염된 물을 마시기 십상이라 병사들은 복통을 달고 다녔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정로환’이란 약을 전군에 지급했는데 의외로 배탈이나 설사병에 효과가 뛰어나 전투력이 강화되었다. 전쟁에서 승리하자 정로환은 ‘러시아를 이긴 약’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한데 약 이름이 고약했다. 1902년 ‘충용정로환(忠勇征露丸)’이란 이름으로 탄생된 이 약은 ‘충성스럽고 용감하게 러시아를 정벌하라’는 뜻을 지녔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약에서조차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던 것이다. 한 제약사는 이 약에 아예 정복하라는 의미인 ‘정복환’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1930년대 ‘충용정로환’ 광고와 시판 중인 정로환. 오른쪽은 ‘征(정)’자가 새겨진 제품
1930년대 ‘충용정로환’ 광고와 시판 중인 정로환. 오른쪽은 ‘征(정)’자가 새겨진 제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정로환 제조사들은 ‘칠 정(征)’ 자를 바르다란 뜻의 ‘정(正)’자로 고쳐 판매하게 되었다. 1926년 일본 법원에서 “정로(征露)는 국제적인 도리나 뜻에 반한다”고 판결한 적이 있는 데다 패망 이후 승전국 러시아의 눈치를 보게 된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라현에 있는 ‘니혼의약품제조사’란 제약사는 지금도 ‘정로환(征露丸)’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 회사는 구일본 군인 얼굴이 들어간 ‘도발적인’ 제품 도안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또 다이꼬 제약이란 회사도 여전히 진군나팔이 그려진 상표 등록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에게 친숙한 정로환은 오늘날까지 침략의 얼룩이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일은 전쟁터에 가짜약까지 등장한 사실이다. 실제 약이 아니고 ‘플라시보(Placebo) 효과’ 얘기다.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알고 복용한 환자의 병세가 호전된다는 것으로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 의약품이 부족해 많이 쓰이던 방법이었다. 특히 강력한 진통제인 모르핀 주사는 부상병들에게 ‘신의 은총’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는데, 그런 만큼 주사액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유럽 전선에 의무병으로 참전한 하버드 의대 출신의 헨리 버처는 “모르핀을 놔준다고 말하고 식염수 주사를 놓았더니 놀랍게도 부상병 가운데 35% 정도가 통증이 가라앉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전쟁의 광기는 ‘가짜약’뿐 아니라 ‘마약 소동’으로도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 당사국들은 잠을 자지 않고도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약 개발을 위해 ‘잠과의 전쟁’을 펼쳤다. 1938년 마약 성분이 든 각성제를 개발한 독일은 프랑스 침공 시 무려 3500만 정을 일선 부대에 뿌렸고, 영국·미국·일본도 오늘날 마약으로 엄격하게 사용이 금지된 히로뽕을 군사용으로 사용했다. 기막힌 것은 일본에서는 군수물자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직공들에게 ‘밤샘 작업용’으로 히로뽕을 먹였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피로회복제’로 둔갑해 버젓이 시중에 판매되기도 했다. 종전 후, 마약 중독은 일본 사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사정이 이런대도 수년 전 중국 CCTV는 “한 알만 먹어도 3일 내내 잠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밤 독수리’ 약을 우리 군이 개발했다”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인간의 잠을 쫒는 ‘잔인한 약’ 개발은 지금도 진행형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1941년 일본의 히로뽕 판매 광고. 원 안은 ‘히로뽕’ 글자. 2차 세계대전 당시 페니실린 선전 포스터.
1941년 일본의 히로뽕 판매 광고. 원 안은 ‘히로뽕’ 글자. 2차 세계대전 당시 페니실린 선전 포스터.

2차 세계대전에서는 또한 인류 최초의 항생제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1943년부터 상용화된 페니실린은 수많은 부상병과 환자들의 목숨을 구한 ‘기적의 약’이었다. 하지만 이 약에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1932년 윤봉길 사건 이후 피난길에 오른 우리 임시정부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이 충칭이었다. 분지로 둘러싸인 이곳은 습하고 흐린 날이 많아 “안개도시”라고도 불렸다. 이런 기후에다 생활고까지 겹쳐 임시정부 요인들 가운데 폐병으로 세상을 뜨는 이들이 많았다. 백범 일지에도 “7년 동안 우리 동포 중 80명이나 폐병으로 죽었다”란 구절이 나온다.

 

‘기적의 약’ 페니실린 속에 숨겨진 우리 독립운동사의 안타까운 사연

그런데 백범 김구의 맏아들 김인(1917~1945)이 어느 날 폐병에 걸렸다. 김인은 장차 독립된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유능하고 젊은 독립군 투사였다. 주변에서는 “인이 만큼은 살려야 한다”면서 김구에게 페니실린을 구하도록 설득했다. 당시 페니실린이 귀한 약이긴 했지만 김구 정도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구는 “나의 동지들에게 구해주지 못한 약을 내 아들이라고 해서 어찌할 수는 없다”면서 이를 거절했다. 결국 해방을 5개월 앞둔 1945년 3월, 김인은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27살의 삶을 마감했다. 자식의 생사가 걸린 일에도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을 잃지 않았던 백범. 그가 영원한 ‘민족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싶다.

모친 무덤을 찾은 김인과 가족. 오른쪽은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한 니카이 일본 자민당 간사장(ⓒ연합뉴스)
모친 무덤을 찾은 김인과 가족. 오른쪽은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한 니카이 일본 자민당 간사장(ⓒ연합뉴스)

2년 전 이맘때,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어느 정치인의 ‘생뚱맞은’ 선물 소식을 전했다. 미국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이 민주당 원내총무에게 위장약 ‘정로환’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를 격렬하게 추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신문은 “정로환 선물은 미국 내 정치 게이트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한 대북압력과 러시아 견제를 위해 “미국은 러시아를 이긴 적이 있는 일본과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선물로도 풀이했다.

러시아 게이트에 정로환이 잘 듣는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100년도 더 지난 역사에서 약을 끄집어내 국익에 이용하는 일본 외교는 ‘소름 돋을’ 정도다. 그나저나 이처럼 살얼음판 걷듯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 외교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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