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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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8월 충남 홍성에서 출생한 한용운 선생은 1910년대 부패가 만연하던 한국 불교의 상황 속에서 개혁방안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책, 『조선불교유신론』을 1913년에 발간하였습니다. 불교의 혁신운동을 일으킨 주역이었던 것이죠.

이후 1919년, 선생은 3.1운동 계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불교계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운동 및 전국적인 만세운동에 적극 동참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3월 1일, 한용운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들은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가진 뒤 모두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선생은 옥중에서도 명쾌한 논리로 조선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설, 『조선독립의 서』를 집필하기도 하는 등 일제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외쳤습니다.

1921년 12월, 한용운 선생은 석방 된 뒤에도 1922년 전국적으로 확산된 물산장려운동을 지원하고 1923년 조선민립대학 기성회 상무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계속해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한국문학사에서 선생은 3.1운동 세대가 낳은 최대의 저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6년, 선생은 88편의 시를 모아 [님의 침묵]이라는 첫 시집을 발표하였습니다. ‘님’은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는데요, 일제시대의 한계로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는 자신의 심정을 은유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1927년 2월, 좌우합작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 창설이 추진되자 선생은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이후 경성지회장으로 선출되어 민족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기도 합니다.

일제 말기에 들어선 1940년대, 한용운 선생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창씨개명 반대운동, 조선인 학병 출정 반대운동 등을 펼치며 끝까지 항일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입적할 때까지 남은 생을 보냈던 서울 성북동의 집, 심우장을 지을 때 선생은 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다고 하여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집의 방향을 동북 방향으로 틀어버렸습니다. 선생의 민족적 자존심은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기개였습니다.

1944년 6월 29일, 선생은 그토록 그리던 광복을 1년 남짓 남겨두고 입적하였습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