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독립운동가 |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본문

Loading the player...

도산 안창호 선생은 1878년 11월 9일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6세가 되었을 때, 선생은 평양에서 벌어지는 청일전쟁을 목격하며 큰 충격을 받고 우리 땅이 전쟁터가 된 것은 나라에 힘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협회에 가입 후 귀향하여 독립협회 관서지부를 설립했고, 이때의 활동을 통해 사회와 민족에 대한 소명의식과 국민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독립협회가 정부의 탄압을 받아 해체되자, 고향 강서군 동진면 암화리에 점진학교와 탄포리에 교회를 설립해 교육 활동에 전념하다가 교육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미국에서 구심점 없이 흩어져있는 한인들을 보며 도산 선생은 타국에서 천대받지 않고 상호 권익을 보호하면서 신용 있는 문명인으로 대접받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한인 친목회를 결성하였습니다. 미주 한인들의 최초의 조직이었습니다.

점차 한인사회가 자리를 잡아가자, 선생은 독립을 목표로 공립협회를 창립하고 공립신보를 발간하였으며, 각지에 지방회를 만들어 공립협회를 지도하였습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우리의 외교권이 박탈당하자 선생은 동지들과 함께 1907년 리버사이드에서 대한인신민회를 결성한 후 국내로 귀국하여 비밀결사 신민회를 출범시켰습니다

1909년, 안창호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의 배후로 지목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 일로 일제의 경계 인물로 부각됩니다. 석방되었다가 다시 소환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선생은 다시 국외로 향하게 되죠

미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1913년 5월, 민족을 지도해 나갈 수 있는 인물을 배출하기 위해 흥사단을 출범시켰고, 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한인 교민들을 위한 권익 보호, 언론활동, 사회 활동, 교민 사회 단결 등을 적극 지원하여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을 결집시켜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도산 선생은 한인사회에 독립운동의 길로 함께 나아갈 것을 독려했고 단결을 호소했습니다.

그해 4월 11일,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선생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로 취임하여 임시정부의 체계를 갖춰 조직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자 힘썼습니다.​

이후 선생은 재야에서 임시정부 경제 후원회를 조직하여 재정 위기에 빠진 정부를 후원하고 각지에 한국유일독립당 준비회를 조직하여 각 지역별 독립운동 단체를 유일당체제로 통일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유튜브 티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