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후손

이신애 외손자 이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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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애 (1891년 ~ 1982년)

1913년 결핵 발병으로 개성 호수돈여숙 3학년을 중퇴, 1914년 원산성경학교를 졸업한 뒤 원산 루씨여학교 두산리분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8년 손정도 목사의 지도하에 조국광복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 루씨여학교를 사직한 뒤 상경하여 1919년 3·1운동에 가담하였다. 같은해 5월 혈성부인회 간부에 취임, 장선희와 더불어 상해임시정부 군자금모금에 주력하였다. 
한편, 대동단에 입단, 『대동신보(大同申報)』 간행을 보조하였으며, 같은해 11월 단장 전협(全協)의 지시로 의친왕 이강(李堈)의 상해망명을 주선하였으나, 12월 기밀이 누설되어 대동단 동지 4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미결수로 서대문형무소에 복역중 1920년 3월 유관순과 3·1운동 1주년기념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방파열의 고문을 받았으며, 징역 5년 구형, 징역 4년 선고를 받고 3년 8개월 복역 끝에 출감하였다. 1945년 공주에서 한국부인회(韓國婦人會)를 조직하였고, 1947년부터 11년간 부녀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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