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후손

백초월 종손자 백외식

본문

Loading the player...
백초월(白初月, 1878년 2월 17일 ~ 1944년 6월 29일)은 대한민국 일제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다. 본명은 백인영(白寅榮), 초월은 법호이다. 법명은 동조(東照)이다.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출생. 13세에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영원사로 출가하여 불문에 입문한 뒤 1916년 명진학교(明進學校) 교장을 지냈다. 1919년 4월 경성중앙학교에서 한국민단부(韓國民團部)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민단부장으로서 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19년 7월에는 김재운(金在雲)·박윤(朴允) 등과 함께 항일신문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간하였다. 또 청년들의 독립군 및 상해임시정부 가입을 위하여 전라남도 천은사 주지 하용하(河龍河)를 통해 독립자금을 모았다. 군자금으로 길림성 독립군에 청년 11명, 상해임시정부에 6명을 보내기도 하였다.
백초월은 다시 군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국가채권 발행 계획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1919년 12월 2일 이도흔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3월에는 일본 유학생들이 주도한 3·1운동 1주년 기념시위에 관련되었다는 죄목으로 도쿄에서 잡혀 경성지방법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때 모진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풀려났지만 이후 광인 행세를 하며 친일 승려 규탄 활동과 일심교(一心敎)를 제창하기도 하였다. 1939년에는 백초월이 머물러 있던 마포포교소에서 탈출한 한 신도가 만주로 가는 봉천행(奉天行) 화물열차에서 ‘대한독립만세’라 적은 일이 발각된 사건과 관련하여 일본 경찰에 잡혔다. 판결문이 없어 형기는 알 수 없지만 이후 마포형무소, 대전형무소를 거쳐 청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사망하였다.
백초월은 청주 금천동 형무소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6.25전쟁 때 유해가 소실되어 현재는 묘소 위치를 알 수 없다. 백초월에게는 1986년 건국포장이 수여되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 (2019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