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지사 후손

배동석 손자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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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항일운동을 한 이유로 두 차례 체포되어 복역한 후 만주에서 김좌진과 함께 활동했다. 3·1운동 전개를 의논하고 1919년 3월 1일 학생대표로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앞장섰다. 경상남도 김해(金海) 출생이다. 1906년 대구 계성학교에 재학 중,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 간 복역한 후 동교를 중퇴, 서울 경신학교를 졸업하였다. 목포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다시 체포되었으며, 석방된 후 국외로 탈출, 만주에서 김좌진(金佐鎭)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8년 귀국, 경성연합의전(京城聯合醫專:세브란스)에 재학 중인 1919년 2월 김원벽(金元壁)·이갑성(李甲成)·한위건(韓偉健) 등과 음악회를 가장하고 3·1운동 전개를 의논하였다. 1919년 3월 1일 학생대표로 탑골공원에서 만세시위운동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옥사하였다. 1980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 (2019년 3월)